
우편 서비스의 기원: 페르시아
코로나19로 인한 펜더믹이 지속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우편 시스템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이 우편서비스가 고대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집트와 중국문명에서 우편서비스가 먼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기원전 6세기에 현재 이란 땅의 페르시아인들은 우편 시스템을 이전과 다르게 높은 수준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제국 곳곳에 엄청난 속도를 가진 전문기병을 두어 네트워크를 구성했습니다.
페르시아인은 말을 타고 배달하는 시스템을 사용하여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란 서쪽에 있는 제국의 행정 수도인 '수사'에서 '로열 로드'를 따라 7일~9일 사이에 현재 터키 서부에 있는 '사르디스'로 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두 도시의 거리는 2600km로 도보로 꼬박 세 달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남아있는 문헌에 따르면 다리우스 대제 시대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페르시아 제국은 그리스에서 인도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이 때에도 제국의 도시인 페르세폴리스에서 인도와 이집트까지도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의 기병 사용술
어느 역사를 봐도 이렇게 메시지가 빠르게 전달된 적이 없었습니다. 숙련된 기병과 말 덕분에 페르시아 인들은 험난한 거리를 짧게 커버할 수 있었습니다. 기병을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페르시아 인들은 그리스인들에게 기병 사용의 영감을 줄었고 폴로 게임도 고안해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의 로열로드는 말 수송과 중계를 위해 최초로 고안된 도로였습니다.
또한 페르시아의 우편 시스템은 메시지 전달과 형식에서도 일관성이 있었고 광대한 지역에서 표준어를 사용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어는 페르시아인의 모국어였지만 언어적으로 관련이 없는 아랍어가 행정 언어로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영어와 알파벳이 오늘날에 사용되는 것처럼 봉투와 소포에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로열 로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매우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개인용도가 아닌 공적 용도로만 사용되었습니다. 황제가 칙령을 내리거나 군대가 이동하거나 공물을 운반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황제가 제국의 일을 파악하는데 이용되었습니다.
말이 하루동안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하여 스테이션을 세우고, 배달원은 해 질 무렵부터 새벽까지 이동했습니다. 남아있는 문헌에서는 "첫 번째 라이더는 두 번째 라이더에게, 두 번째 라이더는 세 번째 라이더에게 책임을 전달하고 그다음부터는 손에서 손으로 전달됩니다"라고 전해집니다. 또 다른 문헌에서는 "눈이나 비나 더위나 어둠이 그 지정된 길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을 막지 못하느니라"라고 전해집니다. 아마 이 시기의 우편시스템은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른 육로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독창성과 인내심이 남아있는 곳
서기 7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한 후 이 시스템은 아랍과 몽골과 같은 침략자들이 계속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은 한동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란에 산재해있는 많은 우체국은 아무리 낡아도 주요 도시 사이에 여관과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전히 여행자에게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이러한 우체국은 이란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지만 여전히 전국 각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유적지로 사용되기도 하고 우편 통신 박물관으로 사용되거나 관광지 역할을 합니다. 로열로드와 페르시아의 우편시스템은 과거의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페르시아인들의 독창성과 배달원들의 인내심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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